수빈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명료한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지는 사탕과 둔탁한 소리를 내는 초콜릿을 본다. 그제야 날짜를 셈한다. 삼월의 14일. 뇌물이라니. 굳이 이런 게 없어도…….
다만 꺼낼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화이트데이 같은 걸 챙기실 줄 몰랐는데요."
어쩐지 변명 같은 말이다.
화이트데이란 건 보통 남자 쪽이 좋아하는 여자한테 간식 따위를 선물하는 날 아니었나? 고지식한 고정관념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 당연히 이런 건 기대하지 않았다. 역으로 준비했느냐고 묻는대도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괜히 민망해서 샤프의 뒷부분으로 턱을 몇 번 찍어 누르다가, 사탕을 전부 갈무리해 가방에 챙겨 넣었다. 책가방이 무거워진 건지 마음이 무거워진 건지 알기 어려웠다. 그 뒤론 도무지 글쓰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손목시계를 힐끔 보는 것을 끝으로 수빈이 먼저 공책을 덮었다.
"오늘도 같이 가실 거죠?"
"새삼스럽게 그러지 않은 적도 있고?"
한 학년 위라지만 아무리 봐도 둘 중 하굣길을 걱정해야 하는 건 수빈보다는 도혜 쪽이다. 심지어 이젠 해가 바뀌어 입시까지 앞두고 있으면서 대체 왜 남후배를 매일 집에 데려다주고 앉아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가도혜가 종잡을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인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설득보다는 져주는 쪽이 빠르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한 뒤기도 했다.
자전거는 몇 년 탄 것이라 사용감이 꽤 있었지만, 자물쇠에 함께 걸린 푸른색 헬멧 하나에는 긁힌 자국조차 몇 없었다. 빗길이거나 대화할 거리가 많은 날에는 종종 자전거를 사이에 두고 함께 걷곤 했지만, 오늘은 헬멧을 씌워주는 것으로 의사 전달을 대체했다. 늦은 오후의 햇빛이 쉘에 비추어 반짝거리는 탓에, 수빈이 눈가를 찡그렸다.
시선은 비스듬하다. 턱끈을 조여주며 물었다.
"안 바쁘시다고 했잖아요."
의문치고는 단정하는 어조다. 어쩌면 그러길 바라서일지도 모르고.
"음? 그렇다만?"
"케이크가 맛있다던 카페가 있는데…."
시선이 돌아간다.
"딱히 누구랑 가보진 않았어요."
초봄의 공기를 채우는 낮은 웃음소리…….
도혜가 허리에 둘렀던 팔을 풀고 안장에서 내려오면, 수빈도 적당한 곳에 자전거를 세워뒀다. 학교에서 10분 정도 페달을 밟으면 나오는 거리에는 인테리어가 꽤 인상적인 작은 카페가 있다. 보통은 공부하는 대학생들이나 몇 있을 시간인데, 오늘따라 테이블이 꽉 찬 게 아무래도 화이트데이의 영향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카페에는 히터가 켜져 있어서 느리게 온풍이 불었고, 그 탓인지 건조해서 입이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수빈이 어디선가 추천받은 케이크는 진작 품절되어서, 대신 가장 앞줄에 진열되어 있었을 뿐인 무화과생크림케이크와 커피 두 잔을 주문하게 됐다.
맛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무슨 날인 줄 알았어도 챙기진 않았을 거예요, 아마."
"알아, 그랬겠지."
"어차피 제게 사탕 같은 거 줄 사람도 선배밖에 없고요."
그 말에는 도혜가 비뚜름하게 웃었다. 글쎄? 말하는 것 같은 얼굴에 수빈이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