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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for [D]
차해 2026.03.14 21:43



“도데카 씨는 어른스럽네. 이런 사람이 있다면, 하고도 생각해 본 적 없어?”


동급생 중 하나가 그렇게 물었다. 잘 맞는 사람이 패밀리어이길 바라는 건 흔한 마음이다. 윗치라는 건 그런 거니까. 목숨을 걸고, 운명적인 순간에서 서로를 당겨 돌이킬 수 있는 존재와 마치 짝이라도 이룬 듯 살아가는 것. 헥스는 고개를 살풋 기울이는가 하면 이어 나직하게 웃었다.

 

“글쎄. 그런 치가 있다면…… 그것은 편애일 테지. 내게는 어려운 일이고. ”

“도데카 씨는 꼭 그렇게 말을 하더라. ”


꼭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을 한다는 것, 알고 있는 거지? 하지만 사람이 다 그렇잖나. 멍청하고 귀엽고……. 헥스도 참. 꺄르르 웃는 소리는 여자 아이들의 무언가일까. 시선이 가만히 호로 접히고 무마되었다. 이윽고 그녀는 소리없이 고개를 돌린다. 입학 이후로 늘 나열되는 화제에서 그녀는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그런 꿈을 꾸지 않기에 어른스러운 것이라며, 그리 말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만 했다. 그저 자신을 아직 잘 모르거나. 너무 잘 알거나. 둘 중 하나인 모범생과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건 가지고 싶다 하여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헥스 로고스 도데카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별을 읽고자 하지 않았고, 그 흔한 점술 따위에 시선을 빼앗긴 적도 없었다. 분명히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데도 모든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까, 바랄 필요는 없었다. 적절하게 손에 들어왔느냐 묻거든 그조차 아니겠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이다. 교육자로 유명한 윗치와 소서러의 딸.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기대보다도, 염려를 지고 살았다. 학교에 입학한 윗치는 처음부터 윗치가 아니었음을, 가족이 모를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이 모든 논제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지난한 무언가에 가까웠다. 알고 싶지 않아, 그런 건. 애당초 그다지 갈망하고 싶지도 않고. 가지게 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이 너무 가엾잖아. 내가 줄 수 있는 건 나 하나일 텐데, 나는 그렇게 멀쩡한 것이 되지 못할 운명을 타고 났으니까. 헥스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정말이지. 없는 것을 이리 아끼고 가여워할 수도 없을진대.

 

참으로 오만한 감상이었다.

결국 평범한 것 하나 없이 이대로 이례와 이질의 사례로 남아 그대로 온전하리라 믿었던.



❄



오후의 도서관은 고요하다. 글을 쓰는 소년을 구경하는 것이, 최근 그녀의 취미 중 하나였으므로. 뻔뻔하게 자리를 채운 채 턱을 괴었다. 흥미로운 것만 찾아 다니면서. 그러하지. 재미없을 거라니까. 그렇군 그래? 그런 면박 아닌 면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도 아무래도 좋은 시절이었다. 볕이 창문 사이로 새거든 빛이 그림자처럼 일렁거린다. 펜이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그리고 이건 보여줄 정도가 되면 보여주겠다고 말했잖아.”

“그걸 누가 무어라 했는가? 애당초…….”


이어 침묵하면 무슨 이야기를 삼키는 것이냐 묻는 것처럼. 가만히 의미 담은 시선이 고스란히 쏟아졌다. 달리 사람이 없는 공간에 아하하, 유쾌하게 흐트러진 웃음기가 남았다. 대체 왜 웃는 것이냐 면박을 듣는들 그뿐이다. 빌 어거스트 영은 평범하지 않았다. 적어도 헥스 로고스 도데카의 평으로는 그러했다. 아무리 로우드라 해도 이러한 소서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테니까. 로열 블루 유니언에서도, 필히 그럴 것을 안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당신이 이미 알고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는 이가 처음부터 윗치가 아니었다는 걸, 행동을 꺼려하는 이유가 기어이는 메이지이기 때문이라는 걸. 운명 같은 낭만을 말할 수도 없는 주제에 생은 걸어야만 하는 그 모든 것이…….

이윽고 잠시 표정이 사라졌다.

 

선에 잘 맞추어 놓았던 것이 어딘가 어그러진 소리가 나서, 아. 하고 운을 떼는 것처럼 소리를 뱉은 이는 몸을 일으켰다. 헥스? 빌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도 잠시 고장난 것처럼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 사람은 너무 서정적이야. 무언가를 갈망하는 일 같은 건 없는 편이 나았어.차마 뱉지 못한 말이 몇 년이고 머리에서 돌았다. 그리고 그 순간은 너무나 평범한 날이고, 순간이었기에. 헥스는 단 한 번도 살면서 이런 순간을 꿈꿔본 적이 없었다.

 

“이봐.”


몇 번이고 불러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는 것에 빌이 항의하듯 말하고 나면, 그제야 고개가 돌아가 시야 안에는 사람이 담긴다. 헥스는 그를 바라보았다. 하하, 건조하게 웃는 것에 눈썹이 살짝 올라가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아아, 어떻게 한다…….”


무엇을? 명백히 돌아왔을 의문이라지만 대답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 날 들었던 그 모든 의문을, 헥스 로고스 도데카는 참으로 적절히 편집했다. 무편집이었다면 차라리 선택할 수 있게 했을까. 모를 일이다. 사람이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취할 수는 차마 없으므로.



❄



강박적 사고에 휘말리는 것만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터였다. 헥스 도데카는 그 날 이후로 말문을 닫아버린 지 오래였고, 눈을 마주치지 않았으며, 가구를 몇 번이나 부수었다가 도로 거두고 이내 눈을 가만히 내리감고는 했다. 일상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터였다. 실제로 빌이 그러했듯, 헥스 또한 얼마든지 스스로 "연기"하는 일 따위가 어렵지 않음을 알았다. 사람은 희소한 것에 마음을 두기 마련. 그것이 부정이든 긍정이든, 이미 간 시선이 어떠한 방향으로 기우는 순간. 그것에 많은 것을 할애하고 만다. 헥스의 경우에는 엄연히 이가 사람이었다.

 

차마 바랐던 적도 없는 갈망이 기어이 하나 닿아서는 사람이라니.

 

땅에 제대로 발 붙이고 있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치를. 감히 내가 무어라고. 필드는 전개된 지 오래이고, 그만큼 할 수 있는 것은 갈망일 뿐이다. 나동그라진 것을 내려다 본들 아무런 감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의식적으로 바라지 않으려 하다가 잘 나열하여 손 위에 올리기는 것 역시 가감없던, 윗치가 아닌 메이지는 여느 날의 소녀처럼 자리에 서 있었다. 헥스는 빌처럼 평범을 원하는 방법은 몰랐다. 애당초 타고난 적 없으니 그것을 탐한들 결국 어긋날 것을 알아서였다.

빌 어거스트 영의 바람을 자신으로 하여금 어긋내 놓았다 한들 놓아줄 생각 역시 없었다. 쥐고 던지는 것은 충동이고,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의 굴레였다. 참으로 서정적이었다. 그 표현이 아닐 수 없다며 헥스는 자조했다. 새듯 웃었다.


“다름이 아닌, 나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


울음기에 죄 갈라진 목소리에는 곧 기침이 따라 붙었다. 또한 세는 것처럼, 손가락을 쥐는 것처럼 제가 던져 부서뜨린 것들의 잔해가 긁히도록 손에 들었다. 또한 괜찮다고 달랠 수도 있었을 테지. 뭐어……. 이제는 운다 하여 안아주지도 않지, 그래. 그럴 가치가 없는가? 그럴 수도 있고. 학생일 적에 유독 도드라지고는 했던 신랄한 음성이 따라 붙었다. 창 너머의 붉음을 온전히 받으면서도 그것에 지지 않을 낯으로, 역광 탓에 표정은 온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내게 갈망이 무언지 제대로 알게 한 건 당신인데, 왜 내가 당신을 져버리며 이 삶을 살라 해…….”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뜨기를 수 번. 바깥에는 필히 겨울이 오고 있을 터였다. 모를 이 하나 없는 탑 안이 서늘하다.


“그냥…… 그래, 내게 질렸다고 해 보는 건 어떠해.”


차라리 그게 피차 괜찮은 끝이 될지도 모르잖나. 표정이 가려진 채로 시선은 선회한다.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인질이라도 생각할 수 있을 테지. 이어 침묵한다. 헥스는 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할 수 없다면, 문장을…… 정정할 기회를 마지막으로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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